👁‍🗨 CULTURE/📍 book

[독서] 24년 3분기에 읽은 책

나무울 2024. 11. 16. 14:04


 

 

24년 3분기에는 총 7권의 책을 읽었다.

장르별로 분류해 보면 에세이 4권, 사회/정치 1권, 소설 1권, 시 1권을 읽었다.

그 어떤 텍스트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인 일들로 바쁘기도 했고, 뇌가 녹아내릴 듯한 짧고 가벼운 콘텐츠만 보다 보니 긴 호흡의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만한 하루 속에서, 그럼에도 시간을 내 읽은 책들은 대부분 에세이다. 생각과 경험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하며, 타인의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황정은 작가의 '일기'는 올해 읽은 에세이 중 가장 보석 같은 책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 ★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이 작아서이기도 하고, 목소리가 작아서이기도 하다. 양육이나 교육, 돌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곁에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다. 10년 남짓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는 김소영은 어린이의 존재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 왔다. 이 책에는 김소영이 어린이들과 만나며 발견한, 작고 약한 존재들이 분주하게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는 세계가 담겨 있다. 이 세계의 어린이는 우리 곁의 어린이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통과해온 어린이이기도 하며, 동료 시민이자 다음 세대를 이루는 어린이이기도 하다. 독서교실 안팎에서 어린이들 특유의 생각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김소영의 글은 어린이의 세계에 반응하며 깨닫는 어른의 역할과 모든 구성원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야 할 사회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점차 넓게 확장해 간다. 어린이를 더 잘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나 자신을, 이웃을, 우리 사회를 구석구석까지 살피려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경험하지만 누구도 선뜻 중요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를 비로소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소영
출판
사계절
출판일
2020.11.16

 

한줄평: 낯설지만 쉬운 실천들이 어린이에게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 또 다른 어린이에게 이어질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가끔은 어린이를 조금 놀려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잘 알려 주기만 하면 오해는 금방 풀리고, 어린이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이 입장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건 오해였어” “장난친 거야”라는 말을 하는 쪽과 듣는 쪽의 심정이 얼마나 다른지 아무리 무심한 어른이라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 ★ ★

 
집 안의 천사 죽이기
20세기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빼어난 에세이들을 테마별로 엄선한 선집.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와 『댈러웨이 부인』 등 모더니즘 문학의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일 뿐 아니라, 정력적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다. 울프는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면서 작가로 출발했으며, 소설가로 성공한 후에도 다양한 종류의 에세이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백만 단어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런 에세이들은 울프가 문학과 인생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표출하는 주요한 언로가 되었으며, 소설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울프 자신의 생생한 육성을 들려준다.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전4권)은 이 책을 옮긴 최애리 역자가 울프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에세이들 중 특히 핵심적이고 빼어난 60편의 산문을 엄선한 것으로, 테마별로 4권의 선집으로 엮어 울프의 세계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울프 산문들의 전체적인 지형을 그려 볼 수 있도록, 울프의 사유의 특색과 발전 과정을 보여 주는 글들을 선별하여 종합적인 시각으로 집대성하였다. 총 4권으로 편성하여, 페미니즘적 이슈나 여성 문학론 등 여성과 관련된 테마의 글들을 제1권(『집 안의 천사 죽이기』), 문학에 대한 울프의 생각을 보여 주는 문학 원론에 가까운 글들을 제2권(『문학은 공유지입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울프가 읽은 개별 문학 작품 및 작가에 대한 글들을 제3권(『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울프 자신의 삶이 담겨 있는 개인적인 수필이나 자전적인 글들을 제4권(『존재의 순간들』)으로 엮었다. 이런 여러 면모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를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독자로서, 인간으로서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고자 했다. 또 권별로 역자의 충실한 해설을 달아, 울프의 사유가 나아간 궤적들을 독자들이 그려 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저자
버지니아 울프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22.06.10

 

한줄평: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은 통찰력과 사유에 감탄하는 한편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인생의 시간은 제한된 것인데, 대체 왜 그 한 시간을 강연을 듣느라 낭비하는 걸까요? 인쇄기가 발명된 지도 여러 세기가 지났는데, 대체 왜 그는 자기 강연을 말로 하는 대신 인쇄하지 않은 걸까요? 그랬더라면, 겨울에는 난롯가에서, 여름에는 사과나무 아래서,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요.

 

 


 

 

전세 지옥

★ ★ ★

 
전세지옥
2021.07.05~2023.10.02 전세 사기 피해자가 2년 넘게 발로 뛰어 써내려간 820일의 기록 “수원 ‘빌라의 신’ 피해액 120억 원으로 늘어”, “수원發 전세포비아 재확산”, “전세 사기 피해자 5명 중 3명 막다른 골목”, “빌라 왕 사태 1년 만에 결혼·출산은 사치”……. 포털사이트에서 ‘전세’라고 검색하면 하루가 멀다고 전세 사기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지난해부터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세 사기 범죄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부의 구제책과 특별법도 소용이 없다. 최근 수원에서 터진 전세 사기 범죄는 2023년 10월 16일을 기준으로 400명 넘는 피해자가 몰렸다. 무려 50년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법과 제도가 어쩜 이렇게 허술하냐는 국민적 공분이 들끓는 와중에, 주목해야 할 신간이 출간되었다. 《전세지옥: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는 파일럿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전세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뒤 시청, 법원, 경찰서, HUG, 주거복지재단을 쫓아다니며 써내려간 820일의 기록을 담았다. 사기 범죄는 바보들이나 당하는 줄 알았던, 그래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 벌어진 일을 처절하리만치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현 시대에 대한 고발문이자 투쟁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책은 2020~2021년 당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와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혔던 천안 지역 피해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의 성격도 지닌다. 저자가 버텨온 820일은 한 번이라도 전세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전세를 얻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인이 했던 실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한다.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든,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전세 제도의 심각한 맹점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최지수
출판
세종서적
출판일
2023.10.25

 

한줄평: 끊임없이 몰아치는 현실적인 재난들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전세금 5,800만 원은 그냥 5,800만 원이 아니다. 가진 자들 입장에서는 껌 값이겠지만 나에게는 미래와 꿈과 지금까지 흘린 땀 그 자체였다. 전세 사기로 잃든 보이스 피싱으로 날리든, 인생 공부한 셈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단어의 집

★ ★ 

 
단어의 집
시인은 단어를 ‘산다(live)’고들 말한다.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부터 2020년 펴낸 세 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까지 맑고 세밀한 언어로 사랑받아온 안희연도 날마다 수많은 단어들의 안팎을 ‘살아간다.’ 그에게 머무는 단어들은 얼핏 보기엔 시인의 노트에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적산온도, 내력벽, 탕종, 잔나비걸상, 선망선, 플뢰레, 파밍, 모탕…. 8시 뉴스나 신문의 과학·기술 섹션에서 본 듯한, 혹은 학술·전문 콘텐츠에 나올 법한 단어들. 평소 잘 쓰이지 않아 그 뜻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 신간 《단어의 집》은 이렇게 비(非)시적인, 건조한, 테크니컬한, 아카데믹한 단어들이 시인의 일상에 기습적으로 끼어들어 ‘가장 문학적인’ 사유의 통로를 여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안희연은 “모든 단어들은 알을 닮아 있고 안쪽에서부터 스스로를 깨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5편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의 단어들이 발산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목격”한다. “저에게 세상은 양초로 쓰인 글자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단어의 집으로 들어서면 감춰져 있던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기도 해요. 그곳엔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파닥임과 반짝임이 있어요. 그 마주침의 순간이 좋아서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_프롤로그 중에서
저자
안희연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1.11.24

 

한줄평: 글의 흐름이 주제와 관계없는 방향으로 벗어나도 이를 제재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쓰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한 줄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한 줄의 문장에는 그 문장을 쓴 이의 가치관, 세계에 대한 이해, 감정, 습관과 한계, 그 모든 것이 담기니까. 

 

 


 

 

마음에 없는 소리

★ ★ 

 
마음에 없는 소리
수백 편의 응모작 가운데 단 하나의 작품을 가려 뽑는 문학동네신인상은 다양한 안목을 지닌 심사위원들이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각자의 선택을 밀어붙이는 열기의 현장이다. 매년 치열하게 의견들이 경합하며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있어온 가운데 2018년에 당선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문학적 기준과 취향이 다른 일곱 명의 심사위원(소설가 김금희, 윤이형, 정용준, 조해진, 문학평론가 백지은, 신형철, 황종연) 모두에게서 잘 쓴 소설”이라는 평을 이끌어내며 “근래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 심사에서도 특별한 경우”(‘심사 경위’에서)라고 할 만한 이례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소설의 구조가 응모자에 대한 큰 기대를 갖게 했다”(김금희) “어떤 실험적 작위 없이도 새로움을 성취했다”(백지은) “필요한 문장을 정확히 제자리에 놓을 줄 알고 그 문장들로 상황을 내면화하는 데 어김없이 성공한다”(신형철)라는 평을 받으며 기대 속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예 작가의 이름은 김지연, 등단작은 「작정기」이다. 이후 작가가 사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작품들 가운데 아홉 편을 선별해 내놓는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는 겹이 많은 페이스트리처럼 자신 안에 아주 많은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며 누군가를 되새기거나 지난날을 곱씹는 동안 일어나는 변화를 세심하게 포착한다. 서정적이며 터프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여운이 짙은, 모순적인 수식어의 조합을 가능케 하는 이번 소설집은 사 년 전 신인 작가를 향해 쏟아졌던 기대를 확실한 믿음으로 바꾸어낼 것이다.
저자
김지연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3.10

 

한줄평: ‘사랑하는 일’이 좋았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한 이 이야기가 좋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는 쌀알처럼 그 마음은 점점 진해졌다.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고마운 마음이 뒤늦게 다시 밀려왔다.

 

 


 

 

일기

★ ★  

 
일기
이름만으로 독자를 설레게 하는 작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 황정은의 첫번째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만해문학상 수상소감(2019년)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 “메일 답신을 쓰는 데 사용하는 문장도 아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을 정도로 소설 이외의 글을 발표하는 일이 드물었다. 거기다 베일에 싸인 작가의 실제 생활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데서 이번 출간은 이미 공고한 황정은의 팬덤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책에는 코로나19 거리두기 생활 속에도 피어나는 정원의 꽃들, 어린 조카가 그리고 간 낙서의 비밀을 탐구하는 작가의 모습 등 일상에서 길어 올린 에피소드부터 아동학대 사망사건, 목포항에서 본 세월호 등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두터운 상념까지 황정은의 마음 속 지도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창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에세이&’ 시리즈의 첫 책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에세이&은 일상과 세계 사이에서 빛나는 이야기를 발굴해 사회와 조응하는 책으로 묶어 창비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시리즈로 꾸려질 예정이다.
저자
황정은
출판
창비
출판일
2021.10.18

 

한줄평: 문장을 참 잘 쓴다는 감상과 동시에 문득 이 문장들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것을 되새기며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마음이나 생각 깊은 곳에서 지울 수 없어 지문처럼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랑에 대답하는 시

★ ★ ★

 
사랑에 대답하는 시
‘사랑’이라는 말에 스며든 다양한 감정과 형태들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앤솔로지 『사랑에 대답하는 시』가 출간되었다. 열다섯 명의 시인이 사랑에 도착해 있는 질문을 직접 고르거나 선정하여, 그에 응답하는 시와 산문을 수록했다. 사랑을 새롭게 정의 내리기 위함이라기보단, 질문과 대답이 막 도착해 있는 한 권의 책 속에서 다양한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무한한 사랑에 이르렀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파도와 물결 속에서 매 순간 다른 표정을 짓는 바다처럼, 이 책도 시와 산문의 물결 속에서 다양한 사랑의 얼굴을 찾아 나선다. 시인들은 서로 같은 질문을 통해 다채로운 답변으로 뻗어 나가기도 하고, 개개인에게 여전히 유효한 사랑의 질문 속에서 시적인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사랑을 보듬는, 이해하는, 가로지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 열다섯 명의 시인들이 들려주는 시와 산문 속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상정한 질문에 근접해가는 대답이 깔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독자들에게 질문이 된다. 각자 경험했던 순간들에서 난반사되어 나온 사랑을 다시금 보듬고, 이해하고, 가로지르며 지금 도착해 있는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다.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태어났음을 깨닫는 임유영의 산문부터, 첫사랑과 퀴어의 교차점에서 규정하는 언어에서 탈주하는 언어를 쓰고 싶게 된 김선오의 산문은 많은 물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버려진 ‘스크류바 빈 봉지’에서 “바래도 예쁜 분홍색”의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신용목의 시와 귤 상자를 들고 ‘너’의 집을 찾아가는 짧고도 긴 여정으로 부재하는 사랑을 새로이 쓰는 안희연의 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해 다시금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잠 속의 몽롱함처럼 사랑을 영원으로 착각하는 양안다의 산문, 젊은 날 지배했던 사랑에 대한 정서를 진솔히 고백하는 황인찬의 산문도 만나볼 수 있다. 사랑이 입장하는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을 포착하는 최지은의 시 「흰 개가 달려오는 결혼식」은 한 사람을 위해 쓰였지만, 사랑을 향해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무수한 모양을 맨손으로 헤아리며, 다시금 용기가 되어주자 말하는 강혜빈의 산문, 함께 했던 자욱한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로 “까닭 없는 슬픔의 까닭”에 대해 말하는 목정원의 시도 사랑의 새로운 얼굴처럼 나타난다. 카자흐스탄에서 유래한 손을 오목하게 받쳐 드는 기도법에서 사랑을 읽어내는 이혜미 의 산문, “당신의 인생 이야기가 한 문장이 되지 않아서” 다행인 날들의 사랑을 회상하는 김승일의 시, 소유하지 않되 다시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계절의 방식에서 사랑을 감지하는 송승언의 산문, 흔들림과 번짐과 내면의 음악으로 사랑의 풍경을 재구성하는 이제니의 시, 사랑이라는 관념을 코너로 몰아세우며 사랑의 의문점을 추리하는 구현우의 시, “우리는 모두 먼저 간 푸른 점이었다”라고 “여름 감기”했던 슬픈 전염에 대해 말하는 이규리의 시까지, 빼놓을 수 없이 모두 주옥같은 사랑의 순간들이다. 단순히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파다한 얼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랑의 의미를 구축하며, 각자의 사랑을 비춰보는 것. 그 마주침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번쯤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저자
강혜빈, 구현우, 김선오, 김승일, 목정원, 임유영
출판
아침달
출판일
2021.12.17

 

한줄평: 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음을, 모든 단어와 문장을 이해할 필요는 없음을 배우고 느끼는 독서였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을 때 우리의 일부도 죽는다. 끝끝내 알지 못하게 된 어떤 사실과 함께 물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어떤 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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