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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적어도 두 번

나무울 2023. 10. 31. 09:00

 

 

 

 
적어도 두 번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풍부한 현실 감각과 강렬한 생명력의 매개자”(황광수 문학평론가)라는 평을 받고 등장한 작가는 연이어 문제작을 발표해오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표제작인 「적어도 두 번」은 “당대 사회의 가망과 한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그래서 그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익숙한 가치판단과 해석의 방식을 물음에 부치는”(인아영 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2018년 9월호) 문제작으로 호명되며 소외된 주체들을 적극적으로 문학사에 기입하려는 2020년대의 흐름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논의되었다. 표제작 외에도 소설집에 수록된 총 일곱 편의 단편은 각양각색의 이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데,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호르몬을 춰줘요」)라는 소설 속 발언을 이어나가며 작가는 생물학적 신체성으로 젠더 범주를 재단하려는 시각을 전복한다. 이성애로 한정된 삶을 강요하고 그 외부를 허용치 않는 가족주의적 생애 모델을 인간의 숙명으로 설명하는 언어 또한 뒤집는데, 일상 곳곳에서 퀴어적 생활과 퀴어적 정동, 퀴어적 삶의 방식과 인식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시도가 매혹적이다. 아울러, 김멜라 소설은 여성이 겪는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때론 얼음 같은 문장으로 때론 유쾌하고 무구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만 익숙한지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여기 한국문학에 새롭고 낯선 목소리가, 김멜라의 소설이 지금 도착했다.
저자
김멜라
출판
자음과모음
출판일
2020.07.24

적어도 두 번

작가 : 김멜라

별점 : ★ ★ ★ ★

 

 


 

 

김멜라 작가의 '저녁놀'을 읽고, 여기저기 긍정적인 감상평을 이야기하고 다녔을 때 추천받았던 책이다. 저녁놀과 같이 정상성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이야기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어떤 소설은 새로운 형식이 좋았고(적어도 두 번), 어떤 소설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이 좋았다(물질계). 주제를 직시하기 위한 폭력성이 노출되면서 읽기 힘든 작품(홍이)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물질계'인데, 언제나 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사주와 동성애의 연결성이 매끄럽고 참신했다. 물질계의 마지막 문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약 누군가 제가 한 인용의 거짓을 밝히려면 도스토옙스키가 쓴 글을 전부 읽어야 할 테죠. 하지만 누구도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제 거짓의 근거입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게으름.
레사는 사주팔자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고 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봄에는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이 오고, 그렇게 음과 양,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운이 좋고 싶으면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어디 가서 신발 벗으면 뒤축을 가지런히 모아놓고, 귀찮아도 양치질하고 자고. 무엇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내가 남에게 해주고.
나는 이미 죽고 나의 찌꺼기들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연기했다. 무엇을 연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결말이 정해진 드라마의 단역 배우였고 내 역할은 오직 다른 이의 기쁨을 위한 경쟁률의 오른쪽 숫자였다.